프롤로그 - 일단 열심히 하던 사람의 고백
새로운 걸 배우고 싶을 때나 큰 성취를 이루고 싶을 때, 우리는 흔히 결심부터 합니다.
“고민할 시간에 일단 부딪혀 보자.”
“매일 꾸준히 하다 보면 어떻게든 늘겠지.”
그러고는 곧장 책상 앞에 앉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복잡하게 계획 세우느라 힘 빼지 말고 먼저 움직이는 것. 그게 미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구조를 짜기보다 일단 실행을 얘기하며 무작정 뛰어드는 쪽이었죠.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한테 맞는 훈련법이 뭘까 고민하는 대신, 문득 주제가 떠오르면 바로 앉아서 써 내려갔습니다. 어떤 날은 한 편을 무사히 끝냈고, 어떤 날은 어색한 문장 몇 개만 남긴 채 덮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처음 며칠은 좋았습니다. 뭐라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꽤 뿌듯했으니까요.
문제는 그 마음이 생각보다 빨리 바닥났다는 겁니다. 불과 2~3일 만에 저는 텅 빈 모니터 앞에서 “이제 뭘 해야 하지?” 하고 멍해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꾸역꾸역 쓰다 보니 컴퓨터에 완성된 글이 몇 편 쌓이긴 했습니다. 원래 기대대로라면 결과물이 쌓일수록 “늘고 있구나” 하는 확신도 같이 쌓여야 했겠죠. 그런데 이상하게, 글을 다시 열어볼수록 회의감만 커졌습니다. 처음 쓴 글보다 나중에 쓴 글이 정말 나아진 건지, 그걸 가늠할 기준이 저한테는 없었던 겁니다.
여기서 저는 성장을 다르게 보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꾸준히 못 하고 작심삼일로 멈출 때, 우리는 보통 자신의 의지나 게으름부터 탓합니다. 그런데 제가 겪은 멈춤과 회의감은 의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노력의 방향이 맞는지, 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나아졌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는 것. 그게 진짜 원인이었습니다. 기준 없이 반복하는 건 거울 없이 자세를 고치는 일과 같습니다. 어디에서 틀어졌는지 볼 수 없으니,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는지 알 수가 없죠. 결국 저를 지치게 한 건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내가 잘하고 있는지 판단할 기준이 없다는 감각이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쏟아붓는 시간과 에너지가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무언가를 빠르게 익히고 압도적인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면, 의외로 남들보다 독한 의지로 버티는 슈퍼맨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막연한 열정에 기대기보다, 목표를 잘게 쪼개고 달성 과정을 구조화하는 데 능숙한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본인이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어제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치들을 훈련 안에 심어둡니다.
우리는 번번이 같은 자리에서 멈춰 서곤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돌아보면, “의지가 부족해서”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흐릿한 목표를 붙잡고, 너무 늦게 오는 피드백을 기다리고, 매번 의지로만 버텨야 하는 환경에서 애쓰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멈춤의 원인을 의지에서만 찾을 게 아니라, 목표와 피드백, 환경이 제대로 설계되어 있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애초에 구조가 엉성하면, 의지가 너무 많은 책임을 떠안게 되니까요.
이 책은 바로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막연한 열정이 금세 소진되지 않도록, 목표와 행동을 측정하고 반복할 수 있는 훈련의 구조로 바꿔가는 과정을 안내하려 합니다. 먼저, 시간이 쌓이는 것과 실력이 느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1장. 오래 했는데, 왜 잘해지지는 않았을까
실력을 키우고 싶을 때 우리는 대개 ‘시간’부터 떠올립니다. 어떤 분야든 매일 꾸준히 반복하면 실력도 자연히 늘겠지 하고 믿는 거죠. 널리 알려진 ‘1만 시간의 법칙’1 같은 개념도 이런 믿음에 힘을 실어줍니다. 압도적인 성취를 이루려면 결국 묵묵히 버티며 시간을 쌓는 게 가장 확실해 보이니까요.
하지만 일터와 일상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시간을 많이 들인 만큼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5년 차가 된 직장인 두 사람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한 사람은 해가 갈수록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고, 까다로운 문제도 점점 능숙하게 풀어 갑니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1년 차 때 익힌 방식을 다섯 번 반복하며 제자리에 머뭅니다. 둘 다 매일 같은 시간을 들여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벌어집니다. 왜 같은 시간을 보내고도 누군가는 눈에 띄게 성장하고, 누군가는 제자리일까요.
이 차이를 들여다보면 흔하지만 강력한 착각 하나와 마주치게 됩니다. 오래 하면 저절로 잘하게 된다는 믿음이죠. 우리는 매일 출퇴근길에 운전대를 잡습니다. 그러나 10년 동안 수천 시간을 운전해도 그것만으로 누구나 프로 레이서가 되지는 않습니다. 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문서를 쓰며 수없이 자판을 두드리지만, 어느 정도 익숙한 속도에 이르고 나면 그 뒤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죠. 반복은 우리를 익숙하게 만들 뿐, 반드시 더 뛰어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자동화가 작용합니다.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익숙한 행동을 자동으로 처리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과제 앞에서는 많은 주의와 노력이 들지만, 익숙해진 행동은 의식하지 않아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목적지까지 운전하고, 손가락이 알아서 자판을 누르는 게 그래서 가능한 거죠. 일상을 유지하는 데는 무척 효율적인 방식입니다.
다만 자동화 자체를 문제 삼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자동화는 숙련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자판을 두드리거나 기본 동작을 수행하는 일은 어느 정도 의식하지 않고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높은 수준의 판단과 문제 해결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으니까요. 글을 쓸 때 매번 자판 위치를 의식해야 한다면 문장 구조나 독자의 반응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발표할 때 호흡과 발성에 온 신경을 빼앗기면 청중의 표정과 이야기 흐름을 놓칩니다. 기초 기능의 자동화는 더 복잡한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입니다.2
구분해야 할 것은 자동화냐 성장이냐가 아닙니다. 어떤 자동화가 성장을 돕고, 어떤 자동화가 성장을 막는지입니다. 유익한 자동화는 더 복잡한 일을 해내는 데 필요한 기초 기능을 안정적으로 받쳐줍니다. 반면 경직된 자동화는 환경과 목표가 달라졌는데도 예전 전략만 되풀이하게 만듭니다. 지금 방식이 현재 목표에 맞는지 점검하지 않으면 효율은 높아져도 수행 수준은 제자리에 머물 수 있습니다. 익숙하게 해내는 능력은 생겼지만, 더 잘해내는 방향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셈입니다.
타자 속도를 높이고 싶다면 평소보다 일부러 더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보고, 오타를 확인하고, 자주 틀리는 조합을 따로 살펴야 합니다. 운전도 그렇습니다. 차선 변경이 불안정한지, 코너를 돌 때 속도 조절이 거친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선 처리가 흔들리는지 살펴야 하죠. 익숙한 방식으로 그저 “열심히, 오래”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경직된 자동화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훈련 설계를 돕다 보면 시간을 쌓고도 무력해진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이분들이 털어놓는 고민은 놀랄 만큼 비슷했습니다.
저와 처음 마주 앉은 분들은 대개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잘하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까지 꾸준히 한 게 별로 없어요.”
처음에는 다들 목표를 이루지 못한 이유를 성실함의 부족에서 찾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상당수가 이렇게 덧붙입니다.
“예전에 어느 정도 꾸준히 해본 적은 있어요.”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게 아닙니다. 굳게 마음먹고 한동안 이어간 경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걸 잘할 수 있다고 느끼시나요?”
그러면 대부분 비슷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렇게 물으면 좀 막연해요. 잘 모르겠어요.”
이 대화에는 왜 ‘일단 열심히’만으로는 부족한지 보여주는 단서가 숨어 있습니다. 이분들은 결코 의지가 부족하거나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꾸준히 시도하며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흐른 뒤 손에 남은 것은 실력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여전히 풀리지 않은 막막함이었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실력을 끌어올리는 훈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나아지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하면 사람은 금세 지칩니다. 확인할 기준이 없으니 재미를 잃고, 재미를 잃으니 다시 시도할 마음도 시들해지죠. 그러니 “꾸준히 한 게 별로 없다”는 말은 단순히 끈기가 부족했다는 뜻이 아닐 수 있습니다. 성장을 확인할 수 없는 반복 속에서 자연스럽게 멈춰 선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여기서 단순한 경험과 ‘훈련 설계(Training Design)’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들은 들인 시간보다 그 시간을 쓰는 방식에 초점을 맞춥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현재 한계를 조금 넘어서는 낯선 지점까지 나아갑니다. 수행 과정을 살피고, 상황에 맞는 피드백으로 방향도 계속 고칩니다.3 이 과정은 대체로 불편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그 불편함은 훈련이 잘못됐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경직된 자동화에서 벗어나 현재 목표에 맞게 수행 방식을 조정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직접 해보기
[직접 해보기] 나의 노력은 노동인가 훈련인가 - 일곱 가지 점검 질문
더 잘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공들여 온 일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일이든 취미든,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지만 실력이 늘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운 활동이면 좋습니다. 앞의 대화에서 제가 던졌던 질문을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순서대로 던져 봅시다. ‘그렇다/아니다’로만 답하지 말고, 구체적인 장면 하나를 떠올릴 수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
이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과 비교해, 지금 무엇을 얼마나 더 잘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많이 늘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달라진 장면 하나를 떠올릴 수 있는가?
-
이제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그렇게 확보한 주의를 지금은 더 복잡한 판단이나 문제 해결에 쓰고 있는가?
-
처음 익힐 때와 비교해 상황과 목표가 달라졌는데도, 그때 통했던 방식을 지금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
-
최근 편안하게 해낼 수 있는 범위를 일부러 벗어나, 조금 어렵거나 낯선 조건에서 시도해 본 적이 있는가?
-
그 시도가 불편했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있었고 다음 시도에서 고쳐볼 수 있었는가? 아니면 시도할수록 오류만 늘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 보이지 않았는가?
-
가장 최근에 받았거나 스스로 알아차린 피드백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그 피드백을 반영해 다음 시도에서 실제로 무엇을 바꾸었는가?
-
다음 한 번의 시도에서 딱 하나만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
1번에 바로 답하지 못했더라도 의지나 성실함이 부족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를 찾아오셨던 분들이 그랬듯, 들인 시간이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훈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신호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 막연함을 발견한 지금이 훈련 설계를 시작하기 좋은 순간입니다.
2번에 답할 수 있다면 기초가 자동화된 덕분에 더 어려운 부분에 주의를 쓸 수 있는 상태입니다. 다만 3번에서 떠오르는 부분이 있다면 유익한 자동화가 아니라 경직된 자동화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4번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면 지금의 반복은 익숙함을 유지하는 데 머물렀을 가능성이 큽니다.
5번의 두 번째 경우처럼 오류만 늘고 고칠 점이 보이지 않았다면,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난도를 너무 높게 잡은 것일 수 있습니다. 불편함이 훈련의 재료가 되려면 내가 다룰 수 있는 크기여야 합니다. 6번에 답하기 어렵다면 피드백이 없었던 것인지, 있었지만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인지 구분해 보세요. 활동이 이미 익숙하다면 피드백을 한 박자 늦추고, 먼저 스스로 오류를 찾아본 뒤 확인해 볼 수도 있습니다.
7번의 답이 노동에 머물던 반복을 훈련으로 바꾸는 출발점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 하나의 변화를 오늘 실행할 수 있는 목표로 좁히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장 미주와 참고 문헌
-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진 통념과 달리, 누적된 연습 시간만으로 탁월한 성취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 Gladwell, M. (2008). Outliers: The story of success. Little, Brown and Company. 이 통념의 일반화에 대한 반론으로는 — Macnamara, B. N., Hambrick, D. Z., & Oswald, F. L. (2014). Deliberate practice and performance in music, games, sports, education, and professions: A meta-analysis. Psychological Science, 25(8), 1608–1618.
- 기초 기능이 충분히 자동화되면 작업기억의 부담이 줄어, 더 높은 수준의 판단과 학습에 인지 자원을 쓸 수 있다. — Sweller, J., van Merriënboer, J. J. G., & Paas, F. G. W. C. (1998). Cognitive architecture and instructional design. Educational Psychology Review, 10(3), 251–296.
- 전문적 수행은 단순한 경험의 누적이 아니라, 현재 한계를 조금씩 넘어서는 과제와 피드백을 동반한 ‘의도적 연습’에서 나온다. — Ericsson, K. A., Krampe, R. T., & Tesch-Römer, C. (1993). The role of deliberate practice in the acquisition of expert performance. Psychological Review, 100(3), 363–406.
- 학습이 가장 잘 일어나는 과제 난이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학습자의 숙련도와 과제의 복잡성에 따라 달라진다(챌린지 포인트 프레임워크). — Guadagnoli, M. A., & Lee, T. D. (2004). Challenge point: A framework for conceptualizing the effects of various practice conditions in motor learning. Journal of Motor Behavior, 36(2), 212–224.
- 피드백을 매번 곧바로 주기보다 때때로 늦추거나 줄이면, 스스로 잘못을 알아차리는 힘이 자라 길게 보면 학습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 Salmoni, A. W., Schmidt, R. A., & Walter, C. B. (1984). Knowledge of results and motor learning: A review and critical reappraisal. Psychological Bulletin, 95(3), 355–386. 피드백을 늦추는 편이 오히려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직접적인 실증으로는 — Swinnen, S. P., Schmidt, R. A., Nicholson, D. E., & Shapiro, D. C. (1990). Information feedback for skill acquisition: Instantaneous knowledge of results degrades learning.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Learning, Memory, and Cognition, 16(4), 706–716.